북한의 '핵억제'와 미국의 '확장억제'
북한 외무성이 29일 발표한 '비망록'은 미국의 핵전력 증강과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핵전파 행위'로 규정하고, 미국이 승인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이 결국 핵 보유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이 문서의 본질은 평양 정권 자신의 핵무력 고도화를 정당화하는 선전이다. 진보적 관점, 즉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평양의 '핵억제'도, 워싱턴과 서울의 '확장억제'도 모두 거부해야 한다. 둘 다 노동계급의 이익과는 무관한,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스탈린주의 관료 카스트의 전쟁 준비이기 때문이다.
평양의 '반제국주의'는 사기다
북한 외무성은 자신을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 부르며, 미국의 핵전파 행위에 맞서 "세계의 평화 수호"에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는 결코 '제국주의에 맞서는 방패'가 아니다. 북한은 스탈린주의 정권, 즉 10월 혁명의 성과를 배반하고 소련에서 권력을 장악한 관료 카스트의 후예가 세운 국가다.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 아래 북한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이 정권의 핵무기는 노동계급을 방어하는 무기가 아니라,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고 국제 무대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지배 계급의 도구다.
중국의 신마오주의자들이 북한을 "제국주의에 맞서는 보루"라고 찬양한 것은 완전히 파산한 주장이었다. 평양의 '반미' 수사는 스탈린주의의 전형적인 위선이다. 스탈린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적이며, '반제국주의'라는 구호로 노동계급을 자국 지배 계급에 종속시킨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강대국 간 대결의 한 축일 뿐이다.
미국의 핵전파와 대중국 전쟁 준비는 실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외무성이 지적한 미국의 행동이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의 핵전력 증강, 한국·일본에 대한 확장억제, 그리고 오커스(AUKUS)를 통한 호주로의 핵잠수함 기술 이전은 모두 실재하며, 그 목표는 명백히 중국과의 전쟁 준비다. WSWS는 오커스 핵잠수함 협정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 주도의 공격적 전쟁 준비"의 일환이라고 반복해서 분석해왔다. 미국 해군 장관은 오커스 협정이 중국을 "패배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추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한국의 '자주 국방'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전쟁 전략에 한국을 더욱 깊이 편입시키는 조치다. 2023년 윤석열 정권이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시사하고, 미한이 "핵공유" 논의를 진행한 것은 모두 워싱턴의 전쟁 준비를 위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중국과의 전쟁에서 전진 기지이자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핵전쟁의 위험은 실재하며, 자본주의가 그 원인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핵전쟁의 위험이 얼마나 실재하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핵전쟁은 추상적인 공포가 아니라,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구체적이고 절박한 위협이다. 과학자들은 핵전쟁이 초래할 '핵겨울'의 실상을 오랫동안 경고해왔다. WSWS가 인터뷰한 핵전쟁 전문가 그레그 멜로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핵전쟁에서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핵폭발이 일으키는 화재 폭풍이 대기 상층부로 쏘아올린 그을음이 햇빛을 차단해 지구 기온을 급강하시키고, 전 지구적 농업 붕괴와 기근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합의다.
그런데 이 위험은 어디서 오는가? 핵무기 자체가 아니라, 핵무기를 소유하고 사용할 준비를 하는 계급 체제에서 온다. 핵무기는 자본주의의 산물이자 그 최고의 표현이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한 경쟁과 국가 간 대립을 본질로 하며, 그 발전의 논리적 귀결이 바로 대량살상무기의 축적이다. WSWS는 팬데믹에서 핵전쟁 위협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 엘리트가 대량 죽음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이 "자본주의가 죽음을 정상화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분석해왔다. 핵전쟁의 위험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내재해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지 않고서는 이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
'핵 보유'는 결코 평화의 보장이 아니다
여기서 핵 보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 북한 외무성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으로, 핵 보유 자체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 등 기존 핵보유국들이 공유하는 '핵억제' 이데올로기와 동일한 논리다. 그러나 핵억제론은 사기다. 핵무기가 전쟁을 막아왔다는 주장은,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은폐한다. 억제는 상호 신뢰가 아니라 상호 공포에 기초하며, 그 공포의 균형은 언제든 오판, 사고, 도발로 무너질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 핵 보유는 노동계급에게 아무런 안전도 주지 않는다. 핵무기는 노동자들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이 통제한다. 미국의 핵무기는 미국 노동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본가 계급의 세계 패권을 방어한다. 북한의 핵무기는 북한 노동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를 방어한다. 러시아의 핵무기는 러시아 노동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과두정의 이익을 방어한다. 핵 보유는 언제나 지배 계급의 손에 쥐어진, 노동계급을 겨냥할 수도 있는 무기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은 '핵 보유의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핵무기의 전면 폐기다. 그러나 여기서도 환상은 금물이다. 핵무기 폐기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조약이나 협상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핵확산방지조약(NPT)이 체결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핵무기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현대화되고 증강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핵무기는 자본주의 국가 체제의 본질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폐기하려면 핵무기를 필요로 하는 체제, 즉 자본주의를 폐기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다
여기서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가 드러난다. 북한 외무성의 비망록은 미국의 핵전파를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 결론은 "우리도 핵무력을 고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평양은 미국의 전쟁 준비에 맞서는 방식으로 자신의 전쟁 준비를 정당화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관점이 아니라, 강대국 간 대결에서 자신의 몫을 극대화하려는 지배 계급의 관점이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한국의 '확장억제'도 노동계급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패권 유지와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며, 그 대가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노동자들의 생명으로 치러질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수백만 명의 죽음을 의미하며, 그것이 핵전쟁으로 확대된다면 그 피해는 전 인류에게 미칠 것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은 분명하다. 노동계급은 이 국가 간 갈등에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 북한 노동자, 한국 노동자, 미국 노동자, 중국 노동자의 공통의 적은 각자의 지배 계급이다. 평양의 스탈린주의 관료 카스트도, 워싱턴의 제국주의자도, 서울의 친미 부르주아지도 모두 노동계급의 적이다.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대결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도, 미국의 확장억제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과 북한, 미국과 중국의 노동자들이 각자의 지배 계급에 맞서 단결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모든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핵억제"와 "확장억제"라는 두 구호는 모두 노동계급을 전쟁의 도살장으로 몰아가는 지배 계급의 사기다. 노동계급의 대답은 오직 하나, 전쟁 준비에 반대하는 국제적 계급 투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