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깃발의 착시: 워싱턴의 승패를 여의도의 승패로 읽는 사람들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 미국 민주당이 상·하원을 동시에 탈환했다는 속보가 뜬 날 아침, 한국의 소셜미디어 피드는 둘로 갈라졌다.
한쪽은 기묘한 안도감과 은근한 축제 분위기다. '상식의 승리', '민주주의의 회복', 그리고 행간에 숨은 속내—‘이제 한숨 돌렸다, 우리 편이 이겼다.’ 다른 한쪽에는 낙담과 의심이 번진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들며 트럼프의 귀환을 자기 일처럼 반겼던 강경 친미 보수층 사이에서는 ‘미국마저 좌파에 넘어갔다’는 탄식과 부정선거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든다.
이름표와 상징이 주는 마법은 실로 강력하다. 여의도의 민주당과 캐피톨 힐의 미국 민주당은 둘 다 ‘민주’라는 간판을 달고, 파란색을 상징색으로 쓰며, 소수자 인권과 복지 담론에서 비슷한 어휘를 구사한다. 한국의 보수 강경층은 트럼프의 반(反)엘리트 언어와 ‘빼앗긴 선거’ 서사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본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양쪽 모두 자기 편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외교와 안보라는 냉혹한 판 위에 올라서는 순간, 이 동질감은 양쪽 모두에게 오독(誤讀)으로 드러난다. 먼저 짚어둘 사실이 있다. 이번 선거로 바뀐 것은 의회 권력이지 백악관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임기 마지막 2년의 의회 권력을 쥐게 됐다. 그러니 한쪽의 환호는 ‘2028년 미국 민주당 정부 복귀’에 대한 기대이고, 다른 쪽의 낙담은 ‘트럼프 시대의 조기 퇴조’에 대한 불안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두 감정 모두 과녁을 빗나가 있다.
1. 우드로 윌슨의 유령과 워싱턴의 ‘모범생들’
많은 이들이 “미국 공화당은 반공의 십자군, 미국 민주당은 대화를 중시하는 유연한 정당”이라는 도식 속에 산다. 1994년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맺고,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던 시절의 잔상이다. 조지 W. 부시와 네오콘의 이라크 침공이 남긴 기억도 이 도식을 굳혔다. 이 도식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공유돼 있다. 민주당 지지층은 그래서 미국 민주당을 반기고, 보수 강경층은 같은 이유로 미국 민주당을 ‘대북 유화파’로 의심한다.
이 기억은 절반만 맞다. 미국 외교사의 족보를 들춰보면 국제 질서를 ‘규범과 제도’의 그물로 엮어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려 한 설계도는 상당 부분 미국 민주당 대통령의 손에서 나왔다. 국제연맹을 구상한 우드로 윌슨, 브레턴우즈 체제와 UN을 설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NATO를 출범시킨 해리 트루먼이다. 물론 이 질서가 뿌리내린 것은 공화당 아서 반덴버그 상원의원 같은 초당파의 협력 덕분이었고, 아이젠하워와 조지 H.W. 부시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가 오늘날 미국 민주당 외교 엘리트의 지배적 문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들은 규범과 절차, 그리고 ‘제도화된 동맹’을 신뢰한다. 외교란 실무진의 바텀업(Bottom-up) 협상과 동맹 간 사전 조율,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가치 연대의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 문법은 민주당의 대북 구상에는 족쇄가 되고, 역설적이게도 국민의힘이 가장 아끼는 안보 자산의 원천이 된다.
2. 멈춰선 ‘종전선언’: 원칙주의라는 이름의 속도 조절
민주당의 심장에는 ‘햇볕’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흐른다.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마침표를 앞세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대담한 정치적 결단과 순서를 뒤집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공식적으로 문을 닫지는 않았다. 2021년 5월 한·미 정상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계승한다고 명시했고, 바이든 정부는 ‘일괄 타결’도 ‘전략적 인내’도 아닌 ‘조정된 실용적 접근’을 표방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말기 종전선언이 의제로 떠오르자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단계별 순서와 시기, 조건에 대해 양국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비핵화의 입구 없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그들에게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신호로 읽혔다. 문안 협의는 이어졌지만 미국은 서두르지 않았고, 북한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민주당 내부의 균열이다. 같은 시기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은 로 칸나, 앤디 김, 그레이스 멩 의원과 함께 한국전쟁의 공식 종결을 촉구하는 ‘한반도평화법안’을 발의했고, 공동발의자 45명 중 44명이 민주당이었다. 반대로 종전선언 거부를 촉구하는 서한은 공화당 의원들 쪽에서 나왔다. 민주당과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목소리는 미국 민주당 안에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들은 외교 정책을 쥔 행정부 주류가 아니라 의회의 진보 소수파였다. 이번 선거로 그들의 발언권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국민의힘과 보수층이 미국 민주당 의회를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진보 진영의 대북 구상이 가장 극적으로 현실에 다가간 순간은, 제도를 비웃던 ‘돌연변이 공화당원’ 도널드 트럼프가 싱가포르(2018년)와 판문점(2019년)에서 김정은의 손을 잡았을 때였다. 미국 민주당 엘리트들이 “내용 없는 쇼”라며 혀를 찼던 그 파격이다. 같은 장면을 한국 보수 강경층은 애써 외면하거나 ‘고도의 협상술’이라고 포장했다. 그들이 지지하는 트럼프가 실은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북·미 정상 담판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은, 보수 진영이 정면으로 다룬 적 없는 모순이다.
그 파격의 결말도 기억해야 한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협상장을 박차고 나온 것은 트럼프 자신이었고, 종전선언도 제재 완화도 끝내 없었다. 톱다운의 문은 활짝 열리는 만큼 순식간에 닫힌다.
3. ‘줄타기’를 허용하지 않는 미국 민주당식 가치 외교
민주당의 또 다른 대외 노선 기둥은 ‘실용 외교’와 ‘전략적 모호성’이다. 중국과 맞닿은 지정학, 높은 대중 무역 의존도를 고려하면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 민주당에게 이런 태도는 실용이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의 약한 고리’로 읽힌다. 바이든 행정부가 밀어붙인 전략을 보라.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 구상,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소다자 협력(Minilateralism), 그리고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전선 구축. 칩4는 결국 흐지부지됐지만, 동맹국에 모호성을 버리고 미국 주도의 규범 전선에 서라는 요구의 방향은 일관됐다.
바이든이 윤석열 대통령을 백악관 국빈 만찬에 불러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게 하며 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비판을 감수하며 강제징용 해법으로 한·일 관계를 봉합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정례화하는 그림을 그려준 이상적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상호방위 의무를 지는 군사동맹은 아니었지만, 위기 시 ‘협의 공약’과 정례 3자 훈련으로 세 나라를 한 축에 묶었다.
4. 국민의힘의 거울상: 트럼프를 반기며 바이든의 유산을 지키는 역설
이 대목에서 거울을 반대편으로 돌려야 한다. 국민의힘이 집권기에 거둔 가장 큰 외교·안보 성과의 목록을 펼쳐보면, 그 대부분에 미국 민주당의 서명이 찍혀 있다.
2023년 4월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은 북핵 대응에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제도화한 장치였다. 핵 운용 협의에 한국이 참여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보수 정부는 이를 ‘사실상의 핵 공유’라고 자평했다. 캠프 데이비드의 한·미·일 협력 틀, 국빈 방미의 상징성, ‘가치 동맹’이라는 수사 모두 바이든 행정부와 함께 만든 것이다. 국민의힘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연대’ 외교는 미국 민주당의 문법과 가장 잘 맞물렸다.
반면 트럼프의 문법은 국민의힘이 지키려는 것들을 흔든다. 트럼프는 동맹을 가치가 아닌 거래로 보고, 주한미군을 비용으로 계산하며,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불렀다. 지난해 SCM 공동성명에서는 주한미군 2만8500명 규모를 유지한다는 문구가 빠졌다. 관세 압박과 대규모 대미 투자 청구서는 보수 정부라고 피해 가지 않는다. 동맹의 예측 가능성과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최우선으로 삼는 국민의힘 주류에게, 의회 권력을 쥔 미국 민주당은 오히려 트럼프의 일방주의를 견제해 줄 안전판일 수 있다.
물론 국민의힘과 보수층이 트럼프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준수를 재확인받았고, 독자 핵무장론에 사실상 빗장을 걸었다. 반면 거래에 열려 있는 트럼프는 핵추진 잠수함처럼 미국 민주당 정부라면 쉽게 내주지 않았을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자강을 원하는 보수 일각이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기회를 보는 것은 근거 없는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민주당 일각이 전작권과 대북 협상에서 트럼프식 파격에 기대를 걸었던 논리와 정확히 같은 구조다.
강경 친미 보수층의 반응은 이보다 감정적이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동맹국 대통령이 아니라 이념적 동지다. 반공, 반중, 반(反)엘리트, ‘좌파에 빼앗긴 선거’라는 서사가 미국 MAGA 운동과 겹치면서, 트럼프의 승패가 곧 자신들의 승패가 됐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는 정의상 한국 보수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보수 진영의 국내 정치적 호소에 화답한 적은 거의 없다. 미국을 향한 이들의 짝사랑은 미국 민주당을 향한 민주당 지지층의 동질감만큼이나 일방적이다.
5. 전작권이라는 시금석: ‘조건’의 벽은 어느 당의 것인가
“우리 군대는 우리가 지휘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는 미완의 주권 회복 프로젝트다. 반대로 국민의힘과 보수층에게 전작권은 한미연합사라는 검증된 억제 체제를 섣불리 허물지 말아야 할 안전장치다. 보수 진영은 북핵 위협이 고도화된 지금 지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해 왔다.
흔한 통념, 즉 ‘미국 민주당 관료들이 조건을 앞세워 전환을 미룬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2006년 노무현 정부와 부시 공화당 정부는 2012년 전환에 합의했고, 당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오히려 조기 이양에 적극적이었다. 시계를 늦춘 것은 한국 보수 정부였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2015년으로,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조건에 기초한 전환’으로 연기를 요청했고, 오바마의 미국 민주당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전작권 문제에서 미국 민주당은 한국 보수의 신중론에 손을 들어준 쪽이었다.
지금 ‘조건’의 벽을 쌓고 있는 쪽은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다. 2025년 11월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양국은 2026년 전작권 전환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1년 뒤 주한미군은 조건에 기초한 전환계획에 명시된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미 국방부는 올해 SCM을 내년 초로 미뤘다. SCM이 해를 넘긴 것은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이재명 정부가 이번 SCM에서 확정하려던 전환 목표연도, 이른바 ‘X연도’도 함께 밀렸다.
방위비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빼겠다던 트럼프의 언사는 진보의 자주국방론과 보수의 핵무장론 모두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부담을 떠넘기는 것’과 ‘지휘권을 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펜타곤이라는 거대한 제도는 어느 당이 백악관에 있든 지휘 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경계한다. 전작권 문제에서 변수는 미국의 집권당보다 펜타곤의 제도적 관성, 그리고 한국 정부 자신의 의지였다.
푸른 깃발과 붉은 모자 뒤의 차가운 방정식
결국 이번 선거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환호와 낙담은 상당 부분 국내 정치적 감수성의 투영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트럼프의 백인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규범 파괴에 대한 거부감을 미국 민주당에 대한 막연한 지지로 옮겼다. 보수 강경층은 국내 정치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분노를 트럼프에 대한 일체감으로 옮겼다. 국민의힘 주류는 그 사이에서 확장억제의 제도화와 거래형 동맹의 기회 사이를 오가며 계산이 엇갈린다.
냉정한 테이블 위에서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북한과의 유연한 대화와 제재 완화를 통한 평화 체제 구축? 미국 민주당 주류는 순서와 조건부터 따진다. 오히려 그것을 정상 간 담판으로 밀어붙인 것은 보수층이 지지하는 트럼프였다.
미·중 사이 줄타기로 얻는 경제적 실리와 전략적 자율성? 미국 민주당은 ‘가치 동맹’의 이름으로, 미국 공화당은 ‘거래’의 이름으로 정렬을 요구한다.
제도화된 확장억제와 흔들리지 않는 동맹? 국민의힘이 가장 아끼는 그 자산은 미국 민주당 행정부와 함께 만든 것이고, 지금 그것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쪽은 트럼프다.
전작권 환수 혹은 유지? ‘조건’의 벽은 특정 정당의 것이 아니라 펜타곤의 것이다. 지금 그 벽 앞에 선 것은 공화당 행정부다.
경제로 눈을 돌려도 셈법은 냉정하다. 바이든의 미국 민주당은 IRA와 반도체법으로 한국 기업의 투자를 미국 안으로 빨아들이고 보조금 조건으로 발을 묶었다. 트럼프의 미국 공화당은 관세를 무기로 3500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받아냈고, 한국 기업이 IRA를 믿고 지은 전기차·배터리 공장의 세액공제를 조기에 없앴으며, 조지아의 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수갑을 찼다. 그 청구서는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았다.
트럼프의 미국 공화당이 몽둥이를 들고 돈을 내놓으라며 요란을 떠는 ‘강도’라면, 바이든의 미국 민주당은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규범과 동맹의 가치를 읊조리며 서약서에 사인을 받아내는 ‘냉혹한 변호사’에 가깝다. 청구서는 어느 쪽에서든 날아온다. 다른 것은 청구서를 내미는 방식뿐이다.
물론 이번 선거 결과가 한국에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미국 민주당 의회는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와 동맹 흔들기에 대해 청문회와 예산, 입법으로 제동을 걸 수단을 쥐었다. 동맹의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국에 분명한 이익이다. 다만 그 이익은 ‘우리 편의 승리’가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계산해서 활용해야 할 지렛대다.
태평양 너머 파란 깃발이 나부낀다고 축배를 들 일도, 붉은 모자가 벗겨졌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다. 워싱턴의 양당은 어느 쪽도 한국의 진보나 보수의 편이 아니다. 그들은 미국의 편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남의 나라 선거 결과에 울고 웃으며 정작 우리 손에 쥔 패를 셈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
국민의힘 단락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2025년 10월 경주 APEC 계기 정상회담)과 워싱턴 선언의 NPT 재확인은 검색 없이 기존 지식으로 썼다. 출고 전에 날짜와 표현을 한 번 확인하길 권한다. 본문에서는 '극우'라는 표현 대신 '강경 친미 보수층'으로 썼다. 칼럼의 비판 대상이 특정 정치 세력 전체로 읽히지 않게 하려는 선택이다. 원하면 '친미 극우'로 바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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