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 6411

조귀동 칼럼 비판

조귀동 칼럼 비판: "불평등을 개탄하되 자본주의는 건드리지 않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 조귀동은 경제칼럼니스트로, 최근 1년여간의 글들은 한결같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지역 격차·주거 문제·일자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서민의 편"에 선 듯한 목소리다. 그러나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불평등의 현상을 도덕적으로 개탄하면서도 그 원인이 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는 단 한 번도 칼을 대지 않는 — 그리고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투쟁 대신 부르주아 정당과 기술관료적 처방으로 독자를 되돌려보내는 —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개량주의다.

  1. '지위 대물림'을 개탄하되 계급은 숨긴다 가장 최근 글인 「'조국 사태' 7년, 달라진 게 없다」가 대표적이다. 조귀동은 조국 일가의 행태를 "배우고,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이 지위 대물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경제·사회·문화 자본을 차지한 '80년대 학번' 명문대생과 나머지 평범한 60년대생의 복합 격차"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 분석의 한계는 명백하다. 그는 불평등을 계급 관계로 보지 않고,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나 세대 간 '자본 전이'의 문제로 환원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점은 이와 정반대다. 학벌·문화 자본의 대물림은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계급이 그 지배를 재생산하는 한 표현일 뿐이다. 조국 일가의 문제는 "명문대생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재벌과 금융자본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그 이권을 사적 부의 축적과 세습에 이용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다. WSWS가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것처럼, 한국의 사회적 불평등은 "빈부 격차의 급속한 확대와 저임금 비정규직의 대규모 확대"라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직접적 결과다(Social inequality worsening in South Korea). 개인의 사익 추구를 탓하는 도덕적 개탄은, 그 사익 추구를 제도화한 체제 자체를 면죄부로 남겨둔다.

  1. 노동계급을 지역·세대·정당 지지율로 분할한다 조귀동 칼럼의 또 다른 특징은 노동계급을 지역과 세대, 그리고 정당 지지율의 단위로 쪼개는 것이다. 「대구 50대의 민주당 지지, 결국 일자리 문제다」, 「대구가 광주를 보고 배워야 할 것」, 「경기 남부를 '제2의 강남'으로 만들자」 같은 글들이 그렇다. 그는 일자리 갈망, 지역 박탈감 같은 실재하는 고통을 포착하지만, 그 해법을 "지역 간 형평", "지방에 공장·예산 배분", "제2의 강남 개발" 같은 지역주의적·기술관료적 처방으로 좁혀버린다.

이는 노동계급을 단일한 계급으로 보지 않고, 서울 대 지방, 수도권 대 비수도권, 강남 대 강북으로 분할하는 부르주아적 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대구의 50대 노동자와 광주의 50대 노동자, 분당의 직장인과 경기 남부의 직장인은 서로 경쟁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들 모두 같은 재벌 자본과 부동산 투기 자본, 그리고 그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의 착취 대상이다. 조귀동이 제안하는 "지방에 공장과 예산을"이라는 처방은, 자본이 더 높은 이윤을 좇아 지역을 오가며 노동자를 경쟁시키는 바로 그 메커니즘을 오히려 강화할 뿐이다. 노동계급의 해답은 지역 간 '공정 분배'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다.

  1. 민주당 지지율을 '민심'으로 둔갑시킨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귀동이 노동계급의 분노를 민주당 지지라는 부르주아 정치의 틀 안에 가두어버린다는 점이다. 「대구 50대의 민주당 지지」라는 글의 제목부터가, 계급적 불만을 정당 지지율의 문제로 번역해버린다. 그에게 정치적 대안이란 민주당이 "광주·전남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를 평가하고, 이재명 정부가 지역에 무엇을 배분하는지를 따지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WSWS가 반복해서 밝혀온 것처럼, 민주당은 노동계급의 정당이 아니라 자본의 정당이다. 민주당은 "높은 인플레이션, 임금 하락, 대량 해고 속에서 노조와 결탁해 계급투쟁을 억압"해왔고(South Korean opposition party pledges phony reforms), 이재명은 당선되더라도 "지배계급의 요구에 따라 긴축과 친전쟁 조치를 강요할 것"이라는 것이 국제노동자운동의 평가다(South Korean presidential election: Democrat frontrunner's right-wing agenda). 조귀동은 민주당을 "서민의 대안"인 양 전제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불만을 부르주아 정치의 재생산으로 흡수하는 데 기여한다. 이것이 바로 소부르주아 지식인의 사회적 기능이다.

  1. '집주인 대출'과 주거 문제 — 투기가 아니라 체제가 문제다 「불평등 시연한 대통령의 '집주인 대출'」에서 조귀동은 DSR 규제와 주택담보대출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주거 문제를 금융 규제의 기술적 설계 문제로 축소한다. 부동산 투기, 전세 사기, 주거 불안의 뿌리는 토지와 주택이 투기 자본의 축적 수단이 된 자본주의적 토지소유 제도 그 자체다. 규제를 손보고, 대출 요건을 조정하고, "집주인 대출"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주택을 상품이 아니라 기본적 사회권으로 전환하는 문제 — 즉 토지의 사적 소유 폐지와 공공 주택의 대대적 건설, 임대료 통제라는 계급적 요구 — 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결론: 개탄하는 지식인은 체제의 안전판이다 조귀동의 칼럼은 한국 사회의 모순을 현상으로는 정확히 포착하되, 그 원인과 해법에서는 철저히 체제 내로 후퇴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개탄하고, 지역 격차를 안타까워하고, 서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듯 보이지만, 그 모든 감정을 민주당이라는 부르주아 정당과 기술관료적 정책 처방으로 수렴시킨다. 이러한 글쓰기의 객관적 기능은 분명하다. 노동계급의 분노를 체제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체제 내 조정 요구로 길들이는 것이다.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것은 "더 공정한 자본주의"를 설계하는 칼럼니스트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폐지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독자적 정당, 그리고 노조 관료제에 맞서는 독립적 랭크앤파일 위원회다. 조귀동이 제공하는 것은 그 반대편 — 지배계급이 노동자의 불만을 안전하게 배출하도록 돕는 안전판 — 일 뿐이다.